요즘은 뭐든 ‘패션’이 붙는다.
공부를 깊이 몰입하기보다는 자격증만 따놓고 마는 사람을 패션이과라 하고, 책을 진득하게 읽기보다는 인증샷용으로만 펼쳐두는 걸 패션독서라 부른다. 나도 가끔 그 범주에 속하는 게 아닌가 싶다.
그리고 여행 앞에서도 예외는 아니다.
나는 가끔 스스로를 패션여행자라고 부른다. 겉보기에 멋져 보이기 위해 떠나는 여행자. 사실 사진 한 장 건지려고 비행기를 타는 건 아닐까, 그런 의심을 스스로에게 해보곤 한다.
물론 이것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. 오히려 솔직히 인정하면 더 편하다. 여행지에서의 나를 멋지게 남기고 싶다는 욕망, 그게 내가 여행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걸.
사진 속 나는 언제나 조금 더 당당하고, 조금 더 빛나 보인다. 화려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, 바닷가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, 혹은 오래된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뒷모습까지. 그 장면들은 단순한 여행의 기록을 넘어, 마치 하나의 연출처럼 남는다. 나는 그럴 때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. 패션여행자라고.
패션여행자는 단순히 옷차림의 문제가 아니다. 누군가는 보여주기라 말하고, 누군가는 관종끼라고 할 수도 있다.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. 멋져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도 결국은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라고.
책을 읽고, 글을 쓰고, 새로운 장소에 서 있는 내 모습이 거짓이 아닌 이상,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내 삶의 한 장면이다.
후쿠오카의 오래된 골목길을 걷던 날을 떠올린다. 굳이 사진을 찍지 않아도 좋았을 풍경이었지만, 나는 결국 카메라를 들었다. 찍어둔 사진을 다시 보면, 그 순간의 빛과 공기뿐 아니라 그때의 내 기분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. 멋져 보이고 싶었던 마음조차 결국은 그날을 기억하게 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.
여행은 언제나 나를 앞으로 데려간다. 보여주기 위해 떠나든, 기록하기 위해 떠나든, 결국은 나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.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. 그래, 나는 패션여행자다.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.
여행의 이유가 꼭 고상할 필요는 없다.
당신은 왜 여행을 하나요?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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